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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은 쇄국을 고수했던 일본이 서구 열강의 압박으로 문호를 열면서 '세계’란 개념이 처음 생겨난 에도 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현대적 감각이 담긴 흑백 영상의 시대극이지만, 종이부터 똥까지 모든 자원을 재활용한 에도 시대 '순환 경제’를 시사하며 귀족과 가난뱅이가 똑같이 누는 똥으로 풍자한 시선도 유쾌하다. 이 작품은 일본에서 많은 사랑을 받아 지난해 키네마준보 ‘일본 영화 베스트 10’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1. 영화의 줄거리

    19세기 일본의 에도시대, 두 청년 야스케(이케마쓰 소스케)와 츄지(간이치로)의 직업은 분뇨수거업자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뒷간의 인분을 수거하고 모아서 그것을 농사꾼에게 비료로 파는 일을 한다. 두 젊은이는 직업 때문에 천대받고 차별받으면서 고달픈 삶을 살고 있지만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오키쿠(구로키 하루)와 우연히 만나면서 그들 사이에 계급을 뛰어넘는 사랑과 우정이 조금씩 피어난다. 어느 날 오키쿠가 제3의 인물에게 공격당한 후 목소리를 잃게 되지만 그들의 유대감과 우정, 그리고 사랑으로 견뎌내고, 이제 오키쿠는 용기를 내서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일상을 꾸린다. 

     

    2. 영화 인물들

    • 오키쿠 (쿠로키 하루):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의 외동딸. 아버지를 노린 자객에게 습격당해 목소리를 잃게 되지만, 승려들의 도움으로 다시 교단에 선다.
    • 야스케 (이케마츠 소스케): 분뇨업자로 더러운 똥 지게꾼이지만 폭우에 온 동네 뒷간의 똥이 넘쳐 아수라장이 된 날 누구보다 환영받는다.
    • 추지 (칸 이치로) : 폐지를 모아 팔다가 야스케를 따라 인분을 사고파는 일을 하게 된 청년. 오키쿠를 좋아하게 된다.

    3. 명장면

    • 세 사람이 변소 앞 처마에서 비를 피하는 장면 : 주인공 세 사람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변소앞에서 피하고 있다. 몰락한 사무라이의 외동딸(오키쿠), 마을 똥을 모아 거름으로 되파는 똥퍼(야스케와 츄지)는 신분 높고 낮음과 상관없이 변소 앞에 있다. 
    • 강변을 걷는 야스케와 츄지의 걸음걸이 : 험하고 멸시받는 일을 하고 있는 두 인물이지만 꿈을 잃지 않고 희망을 가지는 청년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 츄지에 발소리에 귀를 귀울이는 오키구의 얼굴 : 몰락한 사무라이 가문이지만 오키쿠는 꼿꼿한 자존심은 남아있다. 하지만 똥퍼 츄지에 대한 감정은 숨길 수 없다. 이 장면은 가슴 두근두근한 첫사랑의 감정이 묘하게 떠오른다.
    • 츄지가 오키쿠에게 고백하는 장면 : '오키쿠와 세계'는 밑바닥을 뒹군다. 몰락하고 멸시받고 발악한다. 그래도 청춘이란 시간에는 절망만 있지 않다고 끄덕이게 만든다. 우린 아직 젊고 사랑할 수 있다.
    • 음악 없이 고요한 설경, 최고의 장면 : 눈이 내리면 사방이 고요해져서 좋다던 츄지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넣지 않았다고 한다. 현실은 어두운 똥색에 파묻혀 생계를 유지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밝은 청년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4. '오키쿠와 세계'의 감상 포인트

    4.1. 컬러 장면을 기습적으로 삽입한 연출 의도

    이 영화는 투자에 많은 어려움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장편영화로 기획했지만 돈이 모일 때마다 단편을 찍고 덧붙여져서 7장으로 구성된 지금의 영화로 완성됐다. 흥미로운 점은 한 장이 끝날 때마다 영상이 컬러로 잠시 바뀌는 것이다. 감독의 의도는 "모든 영상을 흑백으로 하면 옛날이야기로만 느껴지거나 과거 작품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야기가 현재와 이어진다는 걸 나타내려고 컬러를 넣었다"라고 설명했다.

    4.2. 3년 간의 긴 시간에 나눠 찍으면서 고민한 리듬

    투자비용으로 3년간 촬영이 계속된 이 영화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을 겪었겠지만 특히나 스토리의 일관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촬영 장소, 의상, 세트 등 자원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기도 일관되고 자연스러워 보이도록 고민했다.  

    4.3. '똥'이란 소재의 의미

    영화에서 똥은 밑바닥 인생을 떠올리게 하면서 동시에 청춘을 얘기한다. 사는 것이란 손에 똥이 묻는 것도 모자라 온몸에 뒤집어쓸 정도로 시급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똥거름으로 자란 농작물 먹고 그것은 다시 똥이 돼 나오는 순환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에게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라고 얘기한다. 왜냐하면 지위 고하, 신분에 관계없아 사람들은 누구나 똥을 싸기 때문이다.

    감독은 똥이란 소재를 이렇게 설명한다. "에도 시대 분뇨를 소재로 순환형 사회를 그렸지만, 과거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어떤 메시지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5. 평가

    '오키쿠와 세계'만큼 똥으로 가득 찬 영화는 없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함을 느껴야 할 영화이지만 이상하리만큼 유쾌하고 뭔지 모를 아름다움도 느껴졌다. 몰락한 가문의 딸 오키쿠, 천대와 멸시를 받는 똥퍼(예전 시골에서는 똥퍼는 지게꾼을 똥퍼라고 불렀다) 두 청년, 마을 주민들의 사사로운 이야기를 보면 박복하면서 밑바닥을 뒹구는, 딱히 명료한 스토리가 없는데도 묘한 재미가 느껴진다.

    영화는 주인공들의 오랜 시간 중 일부를 이어 붙여 7개 장으로 구성한다. 그런데 연결되는 하나의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사건 이후와 일상의 찰나, 잠시의 대화, 말로 하는 표현되지 못한 채 몸으로 발산되는 감정을 보여준다. 익숙하지 않지만 세밀한 표현으로 어렵지 않은 영화이다.

    '오키쿠와 세계'는 청춘 코미디 영화이다. 19세기 일본이 배경이고 사무라이나 똥이라는 소재가 좀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청춘만이 담을 수 있는 감각적 소재일 것이다. 오키쿠처럼 변할 수 있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고, 츄지처럼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며, 야스케처럼 꿈을 잃지 않는 것도 청춘이기 때문이다. 고달픈 삶이지만 웃을 수 있고 꽁꽁 언 발로 기다리며 고백하는 것도 청춘이라 할 수 있고, 그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청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키쿠와 세계'는 흑백영화인데도 빛이 난다. 영화를 보는 내낸 내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이유는 이 때문이다.

    조용히 웃고 싶으면 이 영화 '오키쿠와 세계'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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